
마리안 굿맨, 97세에 남긴 마지막 인사
뉴욕 미술계의 전설이자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바꾼 거장, 마리안 굿맨(Marian Goodman)이 향년 97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단순한 갤러리스트를 넘어 예술가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철학적 동반자였던 그녀. 유행보다는 본질을, 판매보다는 미술관 소장을 우선시했던 그녀의 고결한 행보는 현대미술이 지켜야 할 마지막 자부심과도 같았습니다. 현대미술의 '타이탄'이라 불린 그녀의 위대한 여정을 되짚어봅니다.
1. 전설의 타계: 현대미술의 한 시대가 저물다
60년간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마리안 굿맨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사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2021년 90대의 나이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녀는 아들이 있는 LA로 거처를 옮겨 말년을 보냈죠. 그녀의 타계 소식에 전 세계 미술계는 "한 시대의 종료"라며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여성 딜러로서는 드물게 가고시안(Gagosian)이나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가 갤러리'를 일궈낸 그녀의 빈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2. 왜 그녀가 현대미술의 수호자인가?
굿맨은 미국에 유럽의 전위적인 예술을 소개한 결정적인 '가교'였습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같은 거장들이 그녀를 통해 미국 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죠. 그녀의 가장 놀라운 점은 시장의 트렌드를 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 관심과 시민 생활에 대한 비전"을 가진 작품을 선호하며, 판매보다는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작가들과 20년 이상 신뢰를 유지하며 타협 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는 업계의 고결한 기준 그 자체였습니다.
3. 마리안 굿맨의 예술을 향한 60년의 고집
마리안 굿맨의 예술적 뿌리는 1928년 뉴욕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 시작됩니다. 모더니즘 화가 밀턴 에이버리(Milton Avery)의 열성적인 수집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자연스럽게 예술을 보는 안목을 키웠습니다. 에머슨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지적 토대를 쌓은 그녀가 처음 미술계에 던진 화두는 '예술의 민주화'였습니다. 1965년 설립한 '멀티플스(Multiples, Inc.)'를 통해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같은 거장들의 한정판 에디션을 제작하며, "예술은 누구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건 갤러리를 연 것은 49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인 1977년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시장에서 외면받던 벨기에 작가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를 받아주는 딜러가 없자 직접 갤러리를 열기로 결심한 것이죠. 이후 1980년대와 90년대, 뉴욕 미술계가 유행을 쫓아 소호(SoHo)나 첼시(Chelsea)로 몰려갈 때도 그녀는 미드타운의 웨스트 57번가를 묵묵히 지켰습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고수한 이 '아름다운 고립'은 오히려 갤러리에 대한 전 세계적인 신뢰를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리안 굿맨의 왕국은 뉴욕을 넘어 파리(1995년), 런던(2014년), 그리고 아들이 있는 로스앤젤레스(2023년)로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2024년, 오랜 시간 상징적이었던 57번가 시대를 마무리하고 트라이베카(Tribeca)로 본점을 이전하며 새로운 변화를 꾀하기도 했습니다. 6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상업적 성공이라는 쉬운 길 대신, 작가의 예술적 비전을 미술관이라는 역사적 기록 속에 안착시키는 어려운 길을 택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60년의 기록은 결국 '진정한 예술은 타협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현대미술의 가장 고결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마리안 굿맨은 "지난 40년간 그녀의 갤러리에서만 작품을 샀다면 세계 최고의 미술관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확고한 안목을 지녔습니다. 수조 원의 자본이 오가는 화려한 아트 마켓 속에서, 그녀는 끝까지 예술의 본질과 작가의 자존심을 지켜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장하고 싶은 것은 작품의 어떤 부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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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Lawrence Weiner, Marian Goodman, and Pierre Huyghe. ©PatrickMcMullan. Photo: A. Scott. 참고기사: 아트뉴스, 오큘라, 아트넷
마리안 굿맨, 97세에 남긴 마지막 인사
뉴욕 미술계의 전설이자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바꾼 거장, 마리안 굿맨(Marian Goodman)이 향년 97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단순한 갤러리스트를 넘어 예술가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철학적 동반자였던 그녀. 유행보다는 본질을, 판매보다는 미술관 소장을 우선시했던 그녀의 고결한 행보는 현대미술이 지켜야 할 마지막 자부심과도 같았습니다. 현대미술의 '타이탄'이라 불린 그녀의 위대한 여정을 되짚어봅니다.
1. 전설의 타계: 현대미술의 한 시대가 저물다
60년간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마리안 굿맨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사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2021년 90대의 나이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녀는 아들이 있는 LA로 거처를 옮겨 말년을 보냈죠. 그녀의 타계 소식에 전 세계 미술계는 "한 시대의 종료"라며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여성 딜러로서는 드물게 가고시안(Gagosian)이나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가 갤러리'를 일궈낸 그녀의 빈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2. 왜 그녀가 현대미술의 수호자인가?
굿맨은 미국에 유럽의 전위적인 예술을 소개한 결정적인 '가교'였습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같은 거장들이 그녀를 통해 미국 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죠. 그녀의 가장 놀라운 점은 시장의 트렌드를 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 관심과 시민 생활에 대한 비전"을 가진 작품을 선호하며, 판매보다는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작가들과 20년 이상 신뢰를 유지하며 타협 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는 업계의 고결한 기준 그 자체였습니다.
3. 마리안 굿맨의 예술을 향한 60년의 고집
마리안 굿맨의 예술적 뿌리는 1928년 뉴욕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 시작됩니다. 모더니즘 화가 밀턴 에이버리(Milton Avery)의 열성적인 수집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자연스럽게 예술을 보는 안목을 키웠습니다. 에머슨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지적 토대를 쌓은 그녀가 처음 미술계에 던진 화두는 '예술의 민주화'였습니다. 1965년 설립한 '멀티플스(Multiples, Inc.)'를 통해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같은 거장들의 한정판 에디션을 제작하며, "예술은 누구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건 갤러리를 연 것은 49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인 1977년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시장에서 외면받던 벨기에 작가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를 받아주는 딜러가 없자 직접 갤러리를 열기로 결심한 것이죠. 이후 1980년대와 90년대, 뉴욕 미술계가 유행을 쫓아 소호(SoHo)나 첼시(Chelsea)로 몰려갈 때도 그녀는 미드타운의 웨스트 57번가를 묵묵히 지켰습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고수한 이 '아름다운 고립'은 오히려 갤러리에 대한 전 세계적인 신뢰를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리안 굿맨의 왕국은 뉴욕을 넘어 파리(1995년), 런던(2014년), 그리고 아들이 있는 로스앤젤레스(2023년)로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2024년, 오랜 시간 상징적이었던 57번가 시대를 마무리하고 트라이베카(Tribeca)로 본점을 이전하며 새로운 변화를 꾀하기도 했습니다. 6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상업적 성공이라는 쉬운 길 대신, 작가의 예술적 비전을 미술관이라는 역사적 기록 속에 안착시키는 어려운 길을 택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60년의 기록은 결국 '진정한 예술은 타협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현대미술의 가장 고결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마리안 굿맨은 "지난 40년간 그녀의 갤러리에서만 작품을 샀다면 세계 최고의 미술관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확고한 안목을 지녔습니다. 수조 원의 자본이 오가는 화려한 아트 마켓 속에서, 그녀는 끝까지 예술의 본질과 작가의 자존심을 지켜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장하고 싶은 것은 작품의 어떤 부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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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Lawrence Weiner, Marian Goodman, and Pierre Huyghe. ©PatrickMcMullan. Photo: A. Scott. 참고기사: 아트뉴스, 오큘라, 아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