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베니스 비엔날레, 우리가 몰랐던 130년 이야기

La Biennale di Venezia History  1895-2025


베니스 비엔날레, 우리가 몰랐던 130년 이야기

베니스 비엔날레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떤 행사인지 잘 감이 안 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술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현대 미술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이곳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권력 지도가 다시 그려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년마다 열리는 이 오래된 축제에 우리가 여전히 열광하는 이유, 그 이면의 130년 역사와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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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은 '국가 홍보'였다?

1895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 국왕 부부의 은혼식을 기념하며 막을 올렸습니다. 당시 갓 통일된 이탈리아는 유럽 무대에서 국가적 위상을 과시할 화려한 무대가 필요했습니다. 순수한 예술 교류보다는 국가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로 출발한 셈입니다. 하필 베니스였던 이유는 도시 재건 때문이었습니다. 해상 제국의 영광을 잃고 침체에 빠진 베니스에 관광객을 불러모을 타개책이 필요했고, 2년마다 열리는 방식은 부족한 예산을 보완하면서도 희소성과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영리한 전략이 되었습니다.


국가관 시스템은 어떻게 생겨났나

초기 비엔날레에는 지금과 같은 국가별 독립 건물이 없었습니다. 모든 나라가 중앙관 하나에 모여 전시를 치렀죠. 변화가 생긴 건 1907년입니다. 벨기에가 "우리 돈으로 정원 안에 우리만의 집을 짓겠다"며 최초의 독립 국가관을 세운 것입니다. 이에 자극받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강대국들이 앞다투어 지아르디니 (Giardini) 정원 내 명당을 선점하며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의 땅은 한정되어 있었고, 뒤늦게 합류한 신흥국들은 정원 밖 아르세날레 (Arsenale)나 시내 건물을 빌려야 했습니다. 지아르디니 정원 안의 국가관 지도는 사실상 20세기 초 세계 권력의 지도와 같습니다.


The Archival Publication of the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한국관은 정말 화장실 자리에 세워졌나

1995년 건립된 한국관은 지아르디니 정원 안에 입성한 사실상 마지막 국가관입니다. 당시 정원은 신축이 엄격히 금지된 상태였지만, 한국 예술계의 끈질긴 노력 끝에 기존의 공중화장실 부지를 허물고 그 자리에 건물을 세우는 극적인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백남준 작가의 힘이 컸다는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정원 내 단독관을 가진 유일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영화, 건축, 음악까지 예술 제국의 확장

1930년대 파시즘 정권은 비엔날레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역을 넓혔습니다. 1932년 세계 최초의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탄생했고, 이후 음악, 연극, 건축으로 확장되며 거대한 예술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국가적 목적에서 출발한 확장이 결과적으로 베니스를 모든 예술의 메카로 만드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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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현장이 된 비엔날레

1964년, 팝아트 거장 로버트 라우센버그 (Robert Rauschenberg)의 황금사자상 수상은 예술계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당시 미국 정보국 (USIA)은 냉전 체제 아래 '미국의 자유로운 문화'를 과시하기 위해 전시를 전폭 지원했고, 규정을 어겨가며 미국 영사관 건물까지 활용했습니다. 유럽 예술계는 이를 문화적 제국주의라고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이 논란은 1968년 거대한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68혁명의 물결 속에서 베니스 미술 아카데미 학생들이 비엔날레 개막을 막아섰고, "예술을 코카콜라처럼 팔지 마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비엔날레는 국가를 찬양하는 곳이 아니라 인권과 정치, 환경 등 시대의 아픔을 꺼내는 담론의 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1974년에는 칠레 쿠데타에 반대하며 전시 주기를 멈추고 거리 예술로 민주주의에 연대했고, 1977년에는 소련 탄압을 받던 반체제 예술가들을 초청해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베니스는 왜 분쟁의 중심에 있나

국가별로 독립 건물을 두는 국가관 시스템은 분쟁 시기마다 해당 국가의 도덕성을 묻는 외교적 장이 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이스라엘-가자 분쟁이 터질 때마다, 해당 국가관을 폐쇄하라는 목소리가 베니스를 가득 채웁니다. 베니스의 정원은 지도 위의 경계선만큼이나 치열한 전장으로, 1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 보기


Pioneering curator Harald Szeemann celebrated in two Los Angeles shows - The Art Newspaper


큐레이터는 왜 이렇게 힘이 세졌나

초창기 큐레이터는 작품을 배치하는 관리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1972년 하랄트 제만 (Harald Szeemann)이 등장하며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는 큐레이터를 '전시라는 작품을 만드는 저자'로 정의하며, 자신의 철학에 맞춰 작가를 섭외하고 배치했습니다. 이제 총감독이 던지는 주제에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미술사의 주인공이 달라질 만큼, 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의 권한은 절대적입니다.


비영리 전시가 '시장'이 된 이유

베니스 비엔날레는 원칙적으로 판매를 금지하는 비영리 전시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공공 지원이 줄어들자 갤러리들이 작품 제작비부터 운송, 설치, 스태프 비용까지 직접 부담하게 됐고,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갤러리로서는 현장에서 작품을 팔아 수익을 회수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가 베니스 현지에서 수백억 원대 작품을 파는 전시를 직접 개최할 정도로, "베니스에서 보고 바젤에서 사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됐습니다. 여기에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이탈리아의 미술품 수입 부가세 5%는 베니스를 사실상 면세점처럼 기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베니스 비엔날레의 130년은 예술이 권력, 자본과 밀당하며 진화해온 기록입니다. 도시 재건을 꿈꿨던 작은 아이디어는 이제 인류의 동시대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시대의 아픔을 읽고, 누군가는 자본의 기회를 포착합니다. 예술은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일까요, 가치를 매길 자산일까요. 그 질문의 답은 결국 베니스에 있습니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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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La Biennale di Venezia History  1895-2025 / The Archival Publication of the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 Robert Rauschenberg in front of his silkscreen painting Express (1963) at the XXXII International Biennale of Art Exhibition, Venice, 1964. Photo: Ugo Mulas © Ugo Mulas Heirs. All rights reserved./ Pioneering curator Harald Szeemann celebrated in two Los Angeles shows - The Art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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