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크니가 70년간 그린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에게 따라붙던 이 수식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6월 11일 런던 자택에서 89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88세. 영국 왕이 "미술계의 거인"이라 추모했고, 전 세계 미술관과 컬렉터가 같은 날 같은 이름을 불렀죠. 그런데 흥미로운 건, 현대미술을 어렵게만 느끼던 사람들조차 호크니 앞에서는 마음을 열었다는 사실입니다. 잉글랜드 북부의 작은 모직 공업 도시에서 태어난 소년은 어떻게 한 세기의 그림을 바꿔놓았을까요. 그가 남긴 70년의 궤적을 따라가 봅니다.

그는 왜 런던을 떠나 미국으로 갔을까?
1937년 요크셔의 브래드퍼드(Bradford), 모직 산업으로 알려진 공업 도시의 노동계급 가정에서 다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런던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를 다니던 그는 1961년 그룹전 New Contemporaries에 참여하며 영국 팝아트의 등장을 알렸고, 같은 학교에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했습니다.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이었죠. 그가 미국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미국 미술의 강렬한 색채와 활기에 매료된 거예요. "그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분명 색채 속에 살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걸 찾아 떠났다"고 그는 회고했습니다. 1961년 처음 찾은 뉴욕에서 앤디 워홀, 배우이자 사진가인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와 어울리며 미국과 사랑에 빠졌고, 1964년 1월 마침내 로스앤젤레스로 향합니다. 우중충한 북부 잉글랜드와 비에 젖은 런던을 뒤로하고, 햇빛과 자유와 강한 빛을 택한 것이죠.

LA의 수영장은 어떻게 그의 상징이 됐을까?
로스앤젤레스는 호크니가 처음으로 사랑하고 또 그린 도시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파란 수영장들, 영국에선 사치였던 그것이 이곳에선 일상이었죠. 그는 사시사철 반짝이는 수영장을 강렬한 아크릴 물감으로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집요하게 그렸습니다. 화가의 오랜 숙제인 '물의 움직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 거예요. 1967년작 A Bigger Splash는 그 정점이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분홍빛 모더니즘 주택, 야자수, 빈 의자, 그리고 누군가 막 뛰어든 직후의 새하얀 물보라. 정작 다이빙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가 남긴 한순간의 물보라만 화면에 멈춰 있습니다. 그 찰나를 그는 작은 붓으로 2주에 걸쳐 그렸습니다. 훗날 그의 수영장 그림 중 하나인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는 2018년 경매에서 약 1180억 원($9030만)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 작가 작품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이중 초상화'가 왜 그의 대표작이 됐을까?
1970년대, 호크니는 추상에서 개념미술로 옮겨가던 미술시장의 유행을 외면하고 오히려 사실성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이 시기 그가 남긴 것이 '이중 초상화(double portrait)'예요. 두 인물을 나란히 그려 그들 사이의 관계 자체를 화폭에 담는 형식이죠. 멀리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술사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 대표작이 패션 디자이너 부부를 그린 Mr and Mrs Clark and Percy(1970-71)입니다. 호크니는 이 그림에서 결혼 초상화의 관습을 뒤집어 남자를 앉히고 여자를 세웠고, 무릎 위 흰 고양이까지 더해 미묘한 긴장을 연출했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을 무려 열여섯 번 다시 그리며 1년 가까이 매달린 끝에, 두 사람의 친밀함과 동시에 흐르는 침묵의 거리를 동시에 포착해냈죠. 그가 "가장 자연주의에 가까운 작품"이라 부른 이 그림은 지금도 런던 테이트의 대표 소장품입니다.

1980년대, 그는 왜 사진을 '여러 시점으로' 이어 붙였나?
호크니는 한곳에 머무는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그는 사진으로 눈을 돌려 '조이너(joiner)'라 부른 포토 콜라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수십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이죠. 1986년작 Pearblossom Hwy.는 로스앤젤레스 외곽 사막 도로를 800장이 넘는 사진으로 8일에 걸쳐 조립한 작품입니다. 단 하나의 시점에 고정된 사진의 한계를 거부하고, 큐비즘과 중국 두루마리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여러 시점으로 보는 세계'를 담으려 한 거예요. "보통의 사진은 한쪽 눈으로 얼어붙은 사람이 찍은 것"이라는 그의 농담은, 인간이 실제로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그림으로 옮기려던 평생의 화두를 압축합니다.
![One production that nearly does send you out whistling the sets: Glyndebourne On Tour's revival of Hockney and Cox's Rake's Progress. [Image: © Glyndebourne Productions Ltd. Photo: Sisi Burn]](https://cdn.imweb.me/upload/S2017091159b5e2ed37d7b/ef49ef4e7cc06.jpg)
오페라 무대와 판화, 그가 넓혀간 또 다른 캔버스
회화와 사진만이 호크니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연작에서 영감을 받은 판화 A Rake's Progress(1961-63)로 출발해, 평생 판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무대미술도 그의 또 다른 캔버스였죠. 1975년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The Rake's Progress 무대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1978년 모차르트 Die Zauberflöte에서는 1년간 회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고 35점의 무대 배경에 매달렸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로스앤젤레스 오페라의 바그너 Tristan und Isolde(1987),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푸치니 Turandot(1992-93)까지, 그는 빛을 핵심 재료로 삼아 무대 위에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냈습니다. 무대에서 익힌 '관객을 향해 모이는 시선'에 대한 실험은, 그의 회화와 사진 작업에도 깊이 스며들었죠.

2000년대, 고향 요크셔로 돌아간 거장
1978년 이후 줄곧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도, 호크니는 해마다 크리스마스면 요크셔의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는 고향에 머무는 시간을 점점 늘려, 동요크셔의 완만한 구릉지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죠. 모네와 컨스터블처럼 야외에 이젤을 세우고 날씨를 가리지 않고 그렸고, 같은 장소를 계절마다 다시 찾아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그 정점이 2007년작 Bigger Trees Near Warter입니다. 50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인 가로 12미터, 세로 5미터의 이 거대한 풍경화는 그가 완성한 가장 큰 그림이 되었죠. 이 작업은 2012년 런던 왕립아카데미 대규모 개인전 A Bigger Picture로 이어졌고, 같은 해 문화 올림피아드의 문을 여는 전시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고향의 나무와 길과 사계절을, 그는 누구보다 크고 선명하게 그려냈습니다.

80대에도 그가 새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
호크니의 가장 놀라운 점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새로운 도구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사실입니다. 2009년 그는 아이폰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2010년 아이패드가 나오자 곧바로 주된 작업 도구로 삼았습니다. 코로나19 첫 유행기에는 노르망디로 거처를 옮겨 아이패드로 봄을 그렸고, 그렇게 탄생한 116점이 2021년 런던 왕립아카데미 전시 The Arrival of Spring가 되었습니다. 2023년에는 런던 라이트룸에서 몰입형 미디어쇼 Bigger & Closer를 선보였는데, 작가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거의 첫 사례였죠. 호크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거장의 그림을 빌려 만드는 몰입형 전시 유행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어서 아무것도 더할 수 없지만, 나는 살아 있으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했죠. 2025년 파리 루이비통 재단에서 열린 생애 최대 회고전 David Hockney 25는 400여 점으로 그의 70년을 집대성했습니다. 도구는 붓에서 폴라로이드로, 다시 아이패드로 바뀌었지만, 세상을 더 잘 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생을 사랑한다"
만년의 호크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자연과 멀어졌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인데도 말이다. 인생에서 진짜인 것은 음식과 사랑뿐이다, 그 순서대로. 그리고 예술의 근원은 사랑이다. 나는 인생을 사랑한다(Love life)." 70년간 그는 단 한 번도 시장의 유행을 좇지 않았고, 늘 자신이 사랑하는 것 — 빛, 물, 사람, 계절 — 만을 그렸습니다. 새로운 도구가 나오면 망설임 없이 손에 쥐었고, 80대에도 봄이 오는 풍경 앞에서 소년처럼 설레었죠. 그의 그림이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연 건, 어쩌면 거기에 담긴 태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향한 끝없는 호기심,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깊은 긍정. 우리는 어떤가요. 마지막으로 무언가에 순수하게 설렜던 게 언제였나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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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Hockney at his reading table. Jean-Pierre Gonçalves de Lima, © David Hockney. / Andy Warhol, David Hockney, Henry Geldzahler, and Jeff Goodman from "Out of the 60s" Photo by Dennis Hopper. / A Bigger Splash, 1967 - David Hockney / Hockney painting Mr and Mrs Clark and Percy / Pearblossom Hwy., 11-18th April 1986 (Second Version) / One production that nearly does send you out whistling the sets: Glyndebourne On Tour's revival of Hockney and Cox's Rake's Progress. [Image: © Glyndebourne Productions Ltd. Photo: Sisi Burn] / Woldgate Woods inspired David Hockney's Bigger Trees painting / David Hockney viewing a scale model for “Bigger & Closer” created by 59 Productions. Seen on the walls are a projection of August 2021, Landscape with Shadows. Photo courtesy of Mark Grimmer. / Portrait of David Hockney, London, 2023. © David Hockney. Photo by Jean-Pierre Gonçalves de Lima. Courtesy of Serpentine Galleries.
호크니가 70년간 그린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에게 따라붙던 이 수식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6월 11일 런던 자택에서 89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88세. 영국 왕이 "미술계의 거인"이라 추모했고, 전 세계 미술관과 컬렉터가 같은 날 같은 이름을 불렀죠. 그런데 흥미로운 건, 현대미술을 어렵게만 느끼던 사람들조차 호크니 앞에서는 마음을 열었다는 사실입니다. 잉글랜드 북부의 작은 모직 공업 도시에서 태어난 소년은 어떻게 한 세기의 그림을 바꿔놓았을까요. 그가 남긴 70년의 궤적을 따라가 봅니다.
그는 왜 런던을 떠나 미국으로 갔을까?
1937년 요크셔의 브래드퍼드(Bradford), 모직 산업으로 알려진 공업 도시의 노동계급 가정에서 다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런던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를 다니던 그는 1961년 그룹전 New Contemporaries에 참여하며 영국 팝아트의 등장을 알렸고, 같은 학교에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했습니다.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이었죠. 그가 미국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미국 미술의 강렬한 색채와 활기에 매료된 거예요. "그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분명 색채 속에 살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걸 찾아 떠났다"고 그는 회고했습니다. 1961년 처음 찾은 뉴욕에서 앤디 워홀, 배우이자 사진가인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와 어울리며 미국과 사랑에 빠졌고, 1964년 1월 마침내 로스앤젤레스로 향합니다. 우중충한 북부 잉글랜드와 비에 젖은 런던을 뒤로하고, 햇빛과 자유와 강한 빛을 택한 것이죠.
LA의 수영장은 어떻게 그의 상징이 됐을까?
로스앤젤레스는 호크니가 처음으로 사랑하고 또 그린 도시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파란 수영장들, 영국에선 사치였던 그것이 이곳에선 일상이었죠. 그는 사시사철 반짝이는 수영장을 강렬한 아크릴 물감으로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집요하게 그렸습니다. 화가의 오랜 숙제인 '물의 움직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 거예요. 1967년작 A Bigger Splash는 그 정점이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분홍빛 모더니즘 주택, 야자수, 빈 의자, 그리고 누군가 막 뛰어든 직후의 새하얀 물보라. 정작 다이빙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가 남긴 한순간의 물보라만 화면에 멈춰 있습니다. 그 찰나를 그는 작은 붓으로 2주에 걸쳐 그렸습니다. 훗날 그의 수영장 그림 중 하나인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는 2018년 경매에서 약 1180억 원($9030만)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 작가 작품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이중 초상화'가 왜 그의 대표작이 됐을까?
1970년대, 호크니는 추상에서 개념미술로 옮겨가던 미술시장의 유행을 외면하고 오히려 사실성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이 시기 그가 남긴 것이 '이중 초상화(double portrait)'예요. 두 인물을 나란히 그려 그들 사이의 관계 자체를 화폭에 담는 형식이죠. 멀리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술사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 대표작이 패션 디자이너 부부를 그린 Mr and Mrs Clark and Percy(1970-71)입니다. 호크니는 이 그림에서 결혼 초상화의 관습을 뒤집어 남자를 앉히고 여자를 세웠고, 무릎 위 흰 고양이까지 더해 미묘한 긴장을 연출했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을 무려 열여섯 번 다시 그리며 1년 가까이 매달린 끝에, 두 사람의 친밀함과 동시에 흐르는 침묵의 거리를 동시에 포착해냈죠. 그가 "가장 자연주의에 가까운 작품"이라 부른 이 그림은 지금도 런던 테이트의 대표 소장품입니다.
1980년대, 그는 왜 사진을 '여러 시점으로' 이어 붙였나?
호크니는 한곳에 머무는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그는 사진으로 눈을 돌려 '조이너(joiner)'라 부른 포토 콜라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수십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이죠. 1986년작 Pearblossom Hwy.는 로스앤젤레스 외곽 사막 도로를 800장이 넘는 사진으로 8일에 걸쳐 조립한 작품입니다. 단 하나의 시점에 고정된 사진의 한계를 거부하고, 큐비즘과 중국 두루마리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여러 시점으로 보는 세계'를 담으려 한 거예요. "보통의 사진은 한쪽 눈으로 얼어붙은 사람이 찍은 것"이라는 그의 농담은, 인간이 실제로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그림으로 옮기려던 평생의 화두를 압축합니다.
오페라 무대와 판화, 그가 넓혀간 또 다른 캔버스
회화와 사진만이 호크니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연작에서 영감을 받은 판화 A Rake's Progress(1961-63)로 출발해, 평생 판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무대미술도 그의 또 다른 캔버스였죠. 1975년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The Rake's Progress 무대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1978년 모차르트 Die Zauberflöte에서는 1년간 회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고 35점의 무대 배경에 매달렸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로스앤젤레스 오페라의 바그너 Tristan und Isolde(1987),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푸치니 Turandot(1992-93)까지, 그는 빛을 핵심 재료로 삼아 무대 위에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냈습니다. 무대에서 익힌 '관객을 향해 모이는 시선'에 대한 실험은, 그의 회화와 사진 작업에도 깊이 스며들었죠.
2000년대, 고향 요크셔로 돌아간 거장
1978년 이후 줄곧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도, 호크니는 해마다 크리스마스면 요크셔의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는 고향에 머무는 시간을 점점 늘려, 동요크셔의 완만한 구릉지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죠. 모네와 컨스터블처럼 야외에 이젤을 세우고 날씨를 가리지 않고 그렸고, 같은 장소를 계절마다 다시 찾아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그 정점이 2007년작 Bigger Trees Near Warter입니다. 50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인 가로 12미터, 세로 5미터의 이 거대한 풍경화는 그가 완성한 가장 큰 그림이 되었죠. 이 작업은 2012년 런던 왕립아카데미 대규모 개인전 A Bigger Picture로 이어졌고, 같은 해 문화 올림피아드의 문을 여는 전시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고향의 나무와 길과 사계절을, 그는 누구보다 크고 선명하게 그려냈습니다.
80대에도 그가 새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
호크니의 가장 놀라운 점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새로운 도구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사실입니다. 2009년 그는 아이폰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2010년 아이패드가 나오자 곧바로 주된 작업 도구로 삼았습니다. 코로나19 첫 유행기에는 노르망디로 거처를 옮겨 아이패드로 봄을 그렸고, 그렇게 탄생한 116점이 2021년 런던 왕립아카데미 전시 The Arrival of Spring가 되었습니다. 2023년에는 런던 라이트룸에서 몰입형 미디어쇼 Bigger & Closer를 선보였는데, 작가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거의 첫 사례였죠. 호크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거장의 그림을 빌려 만드는 몰입형 전시 유행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어서 아무것도 더할 수 없지만, 나는 살아 있으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했죠. 2025년 파리 루이비통 재단에서 열린 생애 최대 회고전 David Hockney 25는 400여 점으로 그의 70년을 집대성했습니다. 도구는 붓에서 폴라로이드로, 다시 아이패드로 바뀌었지만, 세상을 더 잘 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생을 사랑한다"
만년의 호크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자연과 멀어졌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인데도 말이다. 인생에서 진짜인 것은 음식과 사랑뿐이다, 그 순서대로. 그리고 예술의 근원은 사랑이다. 나는 인생을 사랑한다(Love life)." 70년간 그는 단 한 번도 시장의 유행을 좇지 않았고, 늘 자신이 사랑하는 것 — 빛, 물, 사람, 계절 — 만을 그렸습니다. 새로운 도구가 나오면 망설임 없이 손에 쥐었고, 80대에도 봄이 오는 풍경 앞에서 소년처럼 설레었죠. 그의 그림이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연 건, 어쩌면 거기에 담긴 태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향한 끝없는 호기심,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깊은 긍정. 우리는 어떤가요. 마지막으로 무언가에 순수하게 설렜던 게 언제였나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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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Hockney at his reading table. Jean-Pierre Gonçalves de Lima, © David Hockney. / Andy Warhol, David Hockney, Henry Geldzahler, and Jeff Goodman from "Out of the 60s" Photo by Dennis Hopper. / A Bigger Splash, 1967 - David Hockney / Hockney painting Mr and Mrs Clark and Percy / Pearblossom Hwy., 11-18th April 1986 (Second Version) / One production that nearly does send you out whistling the sets: Glyndebourne On Tour's revival of Hockney and Cox's Rake's Progress. [Image: © Glyndebourne Productions Ltd. Photo: Sisi Burn] / Woldgate Woods inspired David Hockney's Bigger Trees painting / David Hockney viewing a scale model for “Bigger & Closer” created by 59 Productions. Seen on the walls are a projection of August 2021, Landscape with Shadows. Photo courtesy of Mark Grimmer. / Portrait of David Hockney, London, 2023. © David Hockney. Photo by Jean-Pierre Gonçalves de Lima. Courtesy of Serpentine Gall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