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1인 갤러리가 비엔날레에 출품시킨 비결

비롯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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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갤러리가 비엔날레에 출품시킨 비결

올해 페이스(Pace)는 작가 50명을 정리하고 인력 50여 명을 내보냈습니다. 두 달 뒤에는 그 확장기를 함께 설계한 최고홍보책임자와 수석 세일즈 디렉터가 나란히 사표를 냈습니다. 런던에서는 10년 넘은 화랑 두 곳이 같은 주에 폐업을 알렸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작가들이 대금을 못 받았다며 갤러리스트에게 공동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뉴욕 차이나타운의 어느 갤러리가 휘트니 비엔날레에 작가 둘, 베니스 비엔날레에 작가 하나를 올렸습니다. 개관 2년차 갤러리인 데이비드 피터 프랜시스입니다. 직원은 대표를 제외하면 단 한 명입니다. 


Pat Oleszko, ‘Fool Disclosure’, 2026, exhibition view. Courtesy: the artist; David Peter Francis, New York and SculptureCenter, New York; photograph: Charles Benton


그가 꼭 해야만 했던 것들

시작은 이메일 한 통이었습니다. 다비드 파글리아룰로(David Pagliarulo)는 2020년 지금은 문을 닫은 갤러리 JTT의 단체전에서 팻 올레슈코(Pat Oleszko)의 작업을 보고 무작정 메일을 썼습니다. 처음엔 퇴짜를 맞았습니다. 작가는 뉴욕 밖 레지던시에 있다며 물러섰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댁으로 찾아가고 싶습니다." 1970년대부터 그녀가 살아온 맨해튼 로프트였죠. 두어 달 뒤 작가가 오라고 했고, 둘은 통했습니다. 결정타는 말장난이었습니다. 메일 서명에 David 대신 "Day Bed"라고 적었고, 말장난을 좋아하는 올레슈코가 여기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열린 2024년 6월 전시는 그가 혼자 꾸린 세 번째 전시였습니다. 올레슈코는 1990년 이후 뉴욕 개인전이 없었으니 관객 기반도 없었고, 그는 그걸 마침 비어 있던 옆 공간까지 빌려 두 곳에 걸쳐 벌였습니다. 작가 본인이 이렇게 회고합니다. "그런 제안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냥 얼떨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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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lee, Unglee in Ghislain Mollet Viéville’s living room, 1983


그가 하지 않은 것들

그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팔릴지부터 묻지 않았고, 페어를 늘리지 않았고, 사람을 늘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작품이 팔릴지 아닐지가 아니라 제가 믿는 작가를 지원하는 데 동기를 얻습니다. 그냥 고개 숙이고 하는 겁니다. 작가에게는 커리어를 결정짓는 순간이니까요. 저를 믿고 맡긴 거고, 그러면 저는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프로그램을 보면 방향이 분명합니다. 냉전기 미국 정부의 핵무기 회의실을 지키던 경비원 브라이언 라플랑트의 드로잉을 중심에 놓고 그렉 보르도위츠, 루시 레이븐의 작업을 함께 건 단체전, 뉴욕에서 거의 볼 수 없던 독학 작가 윌리엄 스콧의 개인전, 9월에는 미국에 사실상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작가 웅글리(Unglee)의 전시가 예정돼 있습니다. 갤러리 이름도 그렇습니다. 데이비드 피터 프랜시스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피터와 할아버지 프랜시스의 이름을 빌린 것입니다. "두 분 다 미술과는 상관없는 분들인데, 어떻게든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었어요."


Carrie Schneider, First Living Woman (2026)


그가 해낸 것들

올레슈코는 올해 1월 스컬프처센터를 전관 회고전으로 채웠고, 두 달 뒤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1995년작 Blow Hard로 전시장 하나를 통째로 썼습니다. 불을 뿜는 트럼펫을 부는 거대한 초록 얼굴이었고, 비엔날레에서 가장 호평받은 출품작이 됐습니다. 여름에는 10만 달러, 약 1억 4천만 원의 벅스바움상까지 받았습니다. 56명 가운데 만장일치였고, 신작을 낸 동시대 작가에게 가던 상이 30년 전 작업을 낸 79세 작가에게 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습니다. 같은 비엔날레에 이 갤러리 소속 에밀리 루이즈 고시오(Emilie Louise Gossiaux)도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안내견을 기리는 드로잉과 조각을 냈죠. 


캐리 슈나이더(Carrie Schneider)는 지금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가 있습니다. 파글리아룰로가 예전에 일하던 차트 갤러리 소속이었다가 지금은 이곳 전속이 된 작가입니다. 두 비엔날레에 동시에 작가를 올린 딜러는 많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지도,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지도 않은 딜러라면 더욱 그렇고요. 한 가지 덧붙이면, 파글리아룰로는 휘트니 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 드루 소여(Drew Sawyer)와 연인 관계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소여가 2024년 큐레이터로 임명된 뒤 시작됐고 참여 작가 명단은 2025년 말 발표됐습니다. 파글리아룰로는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습니다.


David Pagliarulo, photographed by Emily Sandstrom. / interviewmagazine.com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구조일까, 태도일까

그가 편안한 자리에 있는 건 아닙니다. 개념미술 중심의 젊은 갤러리들은 페어 참가비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을 검토하고 있고, 그도 돈이 늘 불안하다고 인정합니다. 그가 버티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고정비를 낮게 유지하고, 페어는 한 해에 몇 개만 고르고, 하락장에 문을 연 것을 오히려 근거로 삼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문을 열었던 라미켄 크루서블이나 47 커낼도 돈이 안 되는 작업을 밀어붙이고 살아남았으니까요. 


대조가 선명합니다. 2021년의 페이스는 사람을 뽑고, 지점을 열고, Web3를 실험하고, 작품 판매와는 거리가 먼 부서들에 크게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도쿄, 런던, 팜비치, 이스트햄프턴으로 뻗어 나갔고요. 지금은 그림이 완전히 다릅니다. 여러 차례의 감원을 거치며 홍보 조직이 대폭 축소됐고, 마크 글림처 대표는 이 모든 것을 확장기 이후 필요한 교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쪽은 대형 문화 기관처럼 보이려고 6년을 되돌리고 있고, 다른 한쪽은 처음부터 그런 걸 하지 않았습니다. 올레슈코는 파글리아룰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른 갤러리스트들에게 흔히 보이는 에고나 통제욕이 이 사람에게는 안 보여요. 함께 일하는 게 상쾌하고 즐겁습니다." 지난 몇 년간 미술계는 갤러리 모델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례가 보여주는 건 정반대입니다.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한 것. 작가를 찾아다니고, 믿고, 오래 곁에 있는 일이요.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구조일까요, 아니면 태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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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원문
How a 31-Year-Old New York Dealer Got His Artists into the Whitney Biennial and the Venice Biennale
Top Executive and Senior Sales Director Leave Pace Following Gallery's 'Restructuring'
Two Veteran London Galleries Call It Quits

images: David Pagliarulo. Photo Lucas Odahara

글: 비롯 편집팀 BIROT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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