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임영주 개인전
한낮의 뜨거운 볕 아래, 아스팔트 위로 한 여성의 그림자가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온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모자 끝이나 손끝만 언뜻 스칠 뿐, 대부분은 흩어지는 빛 무리에 가려져 있죠. 브루클린의 스페이스 제로원(Space ZeroOne)에서 7월 25일까지 열리는 임영주(IM Youngzoo)의 개인전 '더 레이트(The Late)'는 이 흐릿한 그림자와 그 뒤를 따르는 빛의 웜홀이 화면에서 화면으로 건너뛰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작품이 전시되었나
그림자 뒤에는 VR 촬영용 카메라를 든 임영주 자신이 있습니다. 보통이라면 편집으로 지워질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오히려 초점을 맞춘 거죠. 전시는 이 질문 하나로 수렴합니다. 텅 빈 구멍은 신성으로 가득 찬 것일까,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전시장 한가운데는 임영주가 함께 펴낸 1,254쪽 분량의 동명 저서 '더 레이트'가 놓여 있습니다. VR과 한국 무속, NFT, 그리고 방대한 각주를 넘나드는 이 책은 순서대로 읽히길 거부하며, 전시 자체와 마찬가지로 관람객을 의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듭니다.
왜 이런 방식의 작업을 하게 되었나
작가와 그의 인물들, 그리고 관람객 모두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과학적 혹은 영적 경로로는 이 넓은 세상을 항해할 수 없는, 길 잃은 철새"라는 게 이 작업의 정서적 축입니다. 책은 회고록도, 순수한 픽션도 아닌 사실 확인의 의무에서 벗어난 '픽토-리서치(ficto-research)'에 가깝습니다. 브루스 스털링의 '죽은 미디어 이론'부터 한국 무속에서 새가 갖는 의미까지, 민족지학과 종교학, 미디어 연구의 경계를 흐리는 각주들이 이어지죠. 바둑판이 새겨진 나무 블록 위로 나침반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작품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은 이 방대한 화면들의 굴절을 붙잡아주는 닻 역할을 합니다.
방향을 잃었다는 감각이야말로 지금 이 작업의 핵심이라면,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스스로 만든 지도 없이 세상을 마주해본 적이 있을까요?
예술 애호가들은 꼭 챙겨보는 뉴스레터
🍋비롯 아트 뉴스레터 구독하기
image: Installation view of “IM Youngzoo: The Late 故” at Space ZeroOne, 2026. Photography by Jason Mandella, courtesy of the artist and Space ZeroOne.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임영주 개인전
한낮의 뜨거운 볕 아래, 아스팔트 위로 한 여성의 그림자가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온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모자 끝이나 손끝만 언뜻 스칠 뿐, 대부분은 흩어지는 빛 무리에 가려져 있죠. 브루클린의 스페이스 제로원(Space ZeroOne)에서 7월 25일까지 열리는 임영주(IM Youngzoo)의 개인전 '더 레이트(The Late)'는 이 흐릿한 그림자와 그 뒤를 따르는 빛의 웜홀이 화면에서 화면으로 건너뛰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작품이 전시되었나
그림자 뒤에는 VR 촬영용 카메라를 든 임영주 자신이 있습니다. 보통이라면 편집으로 지워질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오히려 초점을 맞춘 거죠. 전시는 이 질문 하나로 수렴합니다. 텅 빈 구멍은 신성으로 가득 찬 것일까,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전시장 한가운데는 임영주가 함께 펴낸 1,254쪽 분량의 동명 저서 '더 레이트'가 놓여 있습니다. VR과 한국 무속, NFT, 그리고 방대한 각주를 넘나드는 이 책은 순서대로 읽히길 거부하며, 전시 자체와 마찬가지로 관람객을 의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듭니다.
왜 이런 방식의 작업을 하게 되었나
작가와 그의 인물들, 그리고 관람객 모두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과학적 혹은 영적 경로로는 이 넓은 세상을 항해할 수 없는, 길 잃은 철새"라는 게 이 작업의 정서적 축입니다. 책은 회고록도, 순수한 픽션도 아닌 사실 확인의 의무에서 벗어난 '픽토-리서치(ficto-research)'에 가깝습니다. 브루스 스털링의 '죽은 미디어 이론'부터 한국 무속에서 새가 갖는 의미까지, 민족지학과 종교학, 미디어 연구의 경계를 흐리는 각주들이 이어지죠. 바둑판이 새겨진 나무 블록 위로 나침반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작품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은 이 방대한 화면들의 굴절을 붙잡아주는 닻 역할을 합니다.
방향을 잃었다는 감각이야말로 지금 이 작업의 핵심이라면,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스스로 만든 지도 없이 세상을 마주해본 적이 있을까요?
예술 애호가들은 꼭 챙겨보는 뉴스레터
🍋비롯 아트 뉴스레터 구독하기
image: Installation view of “IM Youngzoo: The Late 故” at Space ZeroOne, 2026. Photography by Jason Mandella, courtesy of the artist and Space ZeroOne.